엔비디아의 50억 달러 규모 인텔 투자는 데이터센터와 네트워킹 제품에 장기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최근 IT 업계에서 인텔과 엔비디아가 맺은 협력 관계의 중요성이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다.
엔비디아가 560억 달러에 달하는 보유 자금을 활용해 인텔 지분 5%를 50억 달러에 매입하면서 최근 미국 정부 투자에 이어 인텔의 두 번째로 큰 주주가 됐다. 다만 엔비디아가 인텔 이사회에 참여하거나 경영 전략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이는 단순한 지분 투자로, 대상도 파운드리 사업이 아닌 제품 부문에 한정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번 거래를 통해 엔비디아가 기업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핵심인 x86 생태계에 더 깊이 접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인텔의 경우 수요가 높은 GPU와 자사 CPU 판매 기회를 확보하게 됐다. 기술적으로도 두 회사는 합병을 제외하고 사실상 최대한 가까운 수준으로 협력 관계를 강화한 셈이다. 다만 애널리스트들은 양사의 합병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무어인사이츠앤드스트래티지(Moor Insights & Strategy) 수석 애널리스트 안셸 사그는 “합병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현 정권에서라면 특정 시점과 상황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포레스터 리서치(Forrester Research) 수석 애널리스트 알빈 응우옌도 합병은 아직 임박하지 않았다고 봤다. 그는 “규제 장벽과 복잡한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하면 합병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번 거래는 안전한 투자이자 파트너십으로, 홍보 효과와 함께 x86 시장 접근성을 넓히고 엔비디아 GPU 기술을 APU와 SoC에 통합해 아직 진출하지 못한 시장에 도달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이번 거래를 발표하며 클라이언트 측면을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출시될 인텔 칩에 인텔 자체 GPU가 아닌 엔비디아 GPU가 기본 탑재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변화는 서버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편 분석가들은 공통적으로 이번 거래가 AMD에게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AMD는 CPU와 GPU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다는 강점을 앞세워 ‘프론티어(Frontier)’와 ‘엘캐피탄(El Capitan)’ 같은 슈퍼컴퓨터에 CPU와 GPU를 모두 탑재한 바 있다. 하지만 인텔과 엔비디아가 동맹을 맺으면서 머지않아 경쟁력 있는 공동 솔루션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다른 공통된 견해는 인텔의 GPU 기술 기반 AI 가속기 ‘재규어 쇼어스(Jaguar Shores)’와 가우디(Gaudi) AI 가속기의 향방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응우옌은 “이 분야는 이미 엔비디아가 솔루션을 갖추고 있다. 인텔이 기존 제품과 경쟁해야 하는 중복 제품을 계속 개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인텔이 엔비디아의 고속 인터커넥트 프로토콜인 NV링크(NVLink)를 채택했다는 점도 언급할 만하다. 제이골드어소시에이츠(J. Gold Associates)의 애널리스트 잭 골드는 “이는 인텔이 대규모 AI 시장에서 엔비디아와 정면으로 경쟁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사실상 경쟁에 실패했음을 인정했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골드는 엔비디아가 이미 일부 제온(Xeon) 데이터센터 칩을 자사의 대규모 시스템에 활용하고 있으며, x86 칩이 대규모 GPU 랙 운영에 필요한 제어와 전처리 역할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제온 성능이 향상되면 GPU 성능 역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골드는 “이번 발표로 인해 엔비디아의 Arm CPU는 틈새 시장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CPU 분야에서는 검증된 기업인 인텔과 협력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인 선택임을 엔비디아가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핵심 x86 기술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된 엔비디아가 ARM 분야 투자를 계속 이어갈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사그는 “엔비디아는 ARM 개발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특히 자사 CPU를 위한 ARM을 계속 개발 중이기 때문에 중단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불과 15~20년 전 두 회사의 관계는 협력이 불가능해 보일 만큼 악화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젠슨 황과 인텔의 신임 CEO 립부 탄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골드는 이번 거래의 승자가 엔비디아라고 평가하면서, “돈이 걸리면 적도 친구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dl-ciokorea@foundryco.com